어디서 볼 수 있나

필리프 드 샹파뉴의 그림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리슐리외와 아버지의 감사

권력에 붉은 옷을 입힌 화가는 텅 빈 방의 두 수녀도 그렸다. 한 사람은 끝나지 않을까 두려웠던 병에서 회복한 그의 딸이다.

2026년 11월 2일 · 읽는 데 7분 · ART WIKI 편집부

의자 하나, 발 받침 하나, 기도하는 두 여자. 루브르의 〈1662년의 봉헌화〉는 조용히 소식을 전한다. 필리프 드 샹파뉴의 딸 카트린이 마비를 일으킨 병에서 회복했다. 아버지는 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여 감사의 그림을 바쳤다. 오른쪽에 앉은 여자가 카트린이고, 맞은편에는 아녜스 아르노 수녀원장이 무릎을 꿇었다. 방 안의 어떤 것도 박수를 받으려고 놓이지 않았다. 왕과 재상에게 시선이 모이게 하는 법을 알던 화가에게 이런 절제는 선택이었다.

파리: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벽에 그린 라틴어 글은 열이 14개월 이어졌고 카트린 몸 대부분이 움직이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가만히 있는 인물들이 말할 수 없는 것을 글이 알려준다. 문구는 포르루아얄의 의사 장 아몽이 짓고 화가의 조카 장바티스트가 써넣었다. 아버지의 이미지와 의사의 설명, 젊은 화가의 신중한 글씨라는 여러 증언이 한 캔버스에 있다. 샹파뉴는 회복한 여인이 의기양양하게 걷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발을 받친 채 앉혀 두었다.

포르루아얄 공동체는 격렬한 종교 분쟁 안에서 회복을 해석했다. 수녀들은 얀센주의와 관련된 명제들을 비난하라는 압력에 저항했고 왕실과 교회 당국의 요구는 점점 강해졌다. 치유에는 개인의 안도뿐 아니라 공적인 뜻도 실릴 수 있었다. 공동체는 하느님이 지지한다는 징표로 보았다. 이를 의학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림이 왜 중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조용한 두 여인이 속한 기관은 세상에서 안전하게 물러나 있는 곳과 거리가 멀었다.

2026년 가을 점검 때 루브르의 전시 장소는 쉴리관 2층 913실이었다. 그림 앞에서는 인물들과 우리 사이에 얼마나 적은 것이 놓였는지 보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려주는 목격자 행렬이 없다. 흰 옷 위의 붉은 십자가가 거의 유일하게 강한 색이다. 화가는 회복을 눈에 보이는 기록으로 남기되, 설명은 당사자들의 신앙 안에 두었다.

La mère Catherine-Agnès Arnauld (1593-1671) et la soeur Catherine de Sainte Suzanne Champaigne (1636-1686), fille de l'artiste
〈1662년의 봉헌화〉. 아버지는 회복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고 감사를 전한다. 작품 보기 →

파리: 더 큰 무대를 받은 왕

생각을 약 30년 전으로 옮겨 〈승리의 여신에게 관을 받는 루이 13세〉를 보자. 리슐리외가 팔레카르디날의 위인 회랑을 위해 주문했다. 왕의 그림은 그 회랑에서 가장 컸다. 공중의 승리의 여신이 갑옷 입은 왕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멀리 라로셸 포위전이 보인다. 역사적 사건이 군주의 영구적인 속성이 된다. 싸우는 모습일 필요는 없다. 다른 누군가 결과를 머리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

갑옷과 흰 띠, 명령하는 듯한 자세는 수녀복과 다른 일을 한다. 관객의 경의를 조직한다. 루브르의 〈리슐리외 추기경의 초상〉에서 재상에게는 넓게 펼친 붉은 천과 푸른 리본, 손에 든 추기경 모자가 있다. 두 초상은 2026년 가을 점검 당시 리슐리외관 2층 828실에 함께 있었다. 나란히 보면 옷은 장식이라기보다 정확한 공적 언어처럼 느껴진다.

Louis XIII couronné par la Victoire
루이 13세의 초상에서 라로셸의 승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대관 장면이 됐다. 작품 보기 →

재상의 초상에는 매끈한 권위가 감추는 물질적인 이력도 있다. 19세기에 뒷면에 천을 덧대는 작업을 하면서 위와 양옆에 캔버스 띠를 추가했다. 지금의 직사각형은 샹파뉴가 그린 것과 정확히 같지 않다. 그보다 앞서 혁명기에는 아네에 있던 팡티에브르 공작의 컬렉션에서 압수돼 1798년 루브르에 도착했다. 신분을 확립하려 만든 이미지가 그것을 전시하던 사회의 해체 뒤에도 남았다.

런던: 익숙한 의자에 앉지 않는 추기경

내셔널 갤러리의 〈리슐리외 추기경〉은 같은 정치가를 실물보다 크게 만든다. 몸과 넓은 붉은 비단에 비해 머리는 작아 보인다. 공들여 만든 의자가 있어도 그는 선다. 미술관은 서 있는 자세가 대체로 세속 군주에게 쓰였고 고위 성직자는 보통 앉아서 그려졌다는 점을 짚는다. 자세 하나를 정하는 것으로 추기경이 두 영역을 함께 차지한다. 몸에서 떨어뜨려 든 모자가 그 뜻을 읽기 쉽게 한다.

이 전신상은 1630년대에 만든 여러 판본 가운데 하나다. 런던 작품에는 샹파뉴에게 드문 서명이 있으며 원래 목적지는 불확실하다. 선물이었을 수 있다. 작업실 견본으로 남겼다는 생각은 그 서명과 맞추기가 더 어렵다. 자신을 그토록 확신하는 듯한 초상 앞에서 이런 질문은 좋은 동행이 된다. 인물의 권위는 즉각적이지만 물건의 실제 사연은 여전히 맞춰가는 중이다.

파리: 구경꾼 없는 시신

913실로 돌아가면 같은 가을 점검에 기록된 〈죽은 그리스도〉가 있다. 시신은 흰 수의 위에 거의 수평으로 누워 있고 애도하는 사람들은 없다. 샹파뉴가 죽을 때까지 소장했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주문보다 개인적인 목적이 있었던 듯하다. 뒤에 포르루아얄을 거쳐 미술관이 문을 연 1793년 루브르에 들어왔다. 공적인 영예를 만드는 복잡한 장치가 걷혔다. 몸 하나가 만남을 감당해야 한다.

첫 방문을 감당할 만하게 짜려면 루브르의 두 전시실을 기준으로 잡고 관 사이를 걸을 시간을 남겨두자. 종교화에서 샹파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덜어내는지 느끼고 싶다면 왕실 초상부터 보면 좋다. 런던 작품은 다음 여행에서 비교해도 좋겠다. 방문 직전에 선택한 전시실의 접근 가능 여부를 확인하자. 명령하듯 서 있는 그림이 거의 저절로 얻는 시간을 조용한 그림에도 나눠주면 된다.

표지 작품: La mère Catherine-Agnès Arnauld (1593-1671) et la soeur Catherine de Sainte Suzanne Champaigne (1636-1686), fille de l'artiste — Philippe de Champaigne. © 2007 GrandPalaisRmn (musée du Louvre) / Jean-Gilles Berizzi